<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 무라카미 하루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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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모임 멤버 중 한 분이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시며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처럼 도서관에 있는 책 표지도 색채가 없네요’라고 하셨다.
학교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며 나도 느꼈다. 물론 도서관에 있는 책이라 색채가 있는 겉 표지가 벗겨진 상태라 그럴 것이다.
책을 다 읽고 색채가 없는 책의 표지를 바라보니 다자키 쓰쿠루가 죽음만을 생각하며 살았을 때의 그의 마음 같다고 생각되었다.
'완벽한 공동체'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색채를 가진 4명의 친구들. 이 다섯명으로 이루어진 완벽한 정오각형의 공동체.
어느 날 쓰쿠루는 이유를 모른 채 공동체에서 버려진다.
그는 버려진 상처에 의해 이유를 밝히려 하기보단 죽음의 세계로 들어간다.
그가 그의 내면, 외면을 모두 바꾸는 그 시간에 갇혀 있는 모습을 보면서
완벽하다는 그 공동체가 그에게 무엇보다 소중했던 존재였음과 동시에 가시였다는 것을 느꼈다.
나 또한 그와 비슷한 경험이 있다.
처음에는 함께 있는 것이 즐거워 하루 이틀 자주 만나다 보니 그와 친구들처럼 한 공동체가 되어있었다.
그런데 이 공동체라는 것이 오히려 숨막히게 했다.
이것을 깨지 않기 위해 틈을 만들지 않기 위해 서로 극도로 조심하게 되었고 그 조심이 우리의 숨을 막히게 했던 것이었다.
결국 터져버렸다. 누가 먼저라 할거 없이 누가 터트렸는지 모르게 다들 빠져나가 버렸다.
‘완벽’이라는 것이 우리를 얼마나 숨막히게 하는가.
그것을 유지하려 보이는 틈들을 무리해서 막으려 하지는 않는가?
그 틈들이 숨구멍인지도 모르고 말이다.
'순례를 떠난 해'
쓰쿠루는 사라의 도움을 받아 공동체에서 버려진 이유를 찾기 위해 아니 어쩌면 그 속에 애써 묻혀 둔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오랜 기간 마주치려 하지 않았던 그 진실의 역사를 마주한다.
하나씩 진실을 알아가며 스스로 상처를 치유해간다.
진실을 찾아가는 여행을 하는 동안 자신에게만 색채가 없다고 생각한 쓰쿠루는
상처를 치유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에 대한 자신감도 얻었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에 구로를 만나 구로가 해준 말이 기억에 남는다.
‘살아 있는 한 개성은 누구에게나 있는 거야. 겉으로 잘 드러나는 사람과 잘 드러나지 않는 사람이 있을 뿐이야.’
이 책은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이 읽으면 좋을 것
같다.
자신의 가치를 낮춰보는 주인공에게 힘을 주는 말들이 곳곳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자존감이 낮은 한명으로서 좋은 표현들과 말을 얻어갈 수 있던 시간이었다.
1. 그때 죽었더라면 좋았을지도 몰라. 쓰쿠루는 자주 그런 생각을 한다.
그랬더라면 지금 여기 있는 세계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건 매혹적인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 있는 세계가 존재하지 않게 되고, 여기에서 현실이라 부르는 것들이 현실이 아니게 된다는 것.
이 세계에
그 자신이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유로 자신에게 이 세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2. 자기 자신의 가치를 가늠하는 일이란 마치 단위가 없는 물질을 계량하는 것과 같았다. 저울의 바늘이 지잉 소리를 내며 딱 한 군데를 가리키지 않는다.
3. 한정된 목적은 인생을 간결하게 한다.
4. 기억을 어딘가에 잘 감추었다 해도, 깊은 곳에 잘 가라 앉혔다 해도, 거기서 비롯한 역사를 지울 수는 없어.
5. 그것만은 기억해 두는 게 좋아. 역사는 지울 수도 다시 만들어 낼 수도 없는 거야. 그건 당신이라는 존재를 죽이는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6. 그것은 편의상 다자키 쓰쿠루라고 부르는 그릇에 지나지 않으며 실제로 그 내용물은 완전히 바뀌어 버렸다.
그가 아직 그 이름으로 부리는 것은 딱히 달리 부를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7. 질투란 쓰쿠루가 꿈속에서 이해한 바로는, 세상에서 가장 절망적인 감옥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죄인이 스스로를 가둔 감옥이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힘으로 제압하여 집어 넣은 것이 아니다.
스스로 거기에 들어가 안에서 자물쇠를 채우고 열쇠를 철창 바깥으로 던져 버린 것이다.
8. 성찰을 낳는 것은 아픔입니다. 나이도 아니고, 하물며 수염은 더더욱 아니죠.
9. 무슨 일이건 반드시 틀이란 게 있어요. 사고 역시 마찬가지죠.
틀이란 걸 일일이 두려워해서도 안 되지만, 틀을 깨부수는 것을 두려워해서도 안 돼요.
사람이 자유롭기 위해서는 그게 무엇보다 중요해요. 틀에 대한 경의와 증오.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늘 이중적이죠.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이정도예요.
10. 사람의 육체란 이렇게 나약하고 물러. 육체란 놈은 무섭게 복잡한 시스템으로 되어 있고, 사소한 것에도 자주 상처를 입어.
그리고 한번 고장이 나 버리면 대부분 회복이 어려워.
충치나 뭉친 근육쯤은 아마도 쉽게 고칠 수 있을 테지만, 못 고치는 것도 잔뜩 있지.
그렇게 한 치 앞도 모르는 허약한 기반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재능에 대체 얼마나 대단한 의미가 있겠어?
11. 맞아, 바로 그 말이야. 실제로 도약해 보지 않으면 실증할 수 없어.
실제로 도약해버리고 나면 실증할 필요도 없어지고, 중간이 없어. 뛰어오르는가 오르지 않는가, 어느 한쪽이지.
12. 그러나 그것도 수영장 바닥에서 드는 소리처럼 의미 모를 아득한 메아리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온 힘을 짜내 수영장 바닥에서 위로 솟구쳐 올라 머리를 바깥으로 드러냈다. 그제야 소리가 귀에 닿는 듯했다.
13. 사실이란 모래에 묻힌 도시 같은 거라고.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모래가 쌓여 점점 깊어지는 경우도 있고, 시간의 경과와 함께 모래가 날아가서 그 모습이 밝게 드러나는 경우도 있어
14. 이런거 엄청난 패러독스라는 생각 안 들어? 우리는 삶의 과정에서 진실한 자신의 모습을 조금씩 발견하게 돼.
그리고 발견할수록 자기 자신을 상실해 가는 거야.
15. 사람의 마음과 사람의 마음은 조화만으로 이어진 것이 아니다. 오히려 상처와 상처로 깊이 연결된 것이다.
아픔과 아픔으로 나약함과 나약함으로 이어진다.
비통한 절규를 내포하지 않은 고요는 없으며 땅 위에 피 흘리지 않는 용서는 없고, 가슴 아픈 상실을 통과하지 않는 수용은 없다.
그것이 진정한 조화의 근저에 있는 것이다.
16. 살아 있는 한 개성은 누구에게나 있는 거야. 겉으로 잘 드러나는 사람과 잘 드러나지 않는 사람이 있을 뿐이야.
17. 설령 완전하지 않다 하더라도 어떻게든 역은 완성되어야 해. 그렇지? 역이 없으면 전차는 거기 멈출 수 없으니까.
그리고 소중한 사람을 맞이할 수도 없으니까. 만일 뭔가 잘못된 부분이 발견되면 필요에 따라 나중에 고치면 되는 거야.
먼저 역을 만들어. 그 여자를 위한 특별한 역을. 볼일이 없어도 전차가 저도 모르게 멈추고 싶어 할 만한 역을.
그런 역을 머릿속에 떠올리고 거기에 구체적인 색과 형태를 주는 거야.
그리고 못으로 네 이름을 토대에 새기고 생명을 불어넣는 거야. 너한테는 그런 힘이 있어.
18. 우리는 그때 뭔가를 강하게 믿었고, 뭔가를 강하게
믿을 수 있는 자기 자신을 가졌어. 그런 마음이 그냥 어딘가로 허망하게 사라져 버리지는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