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읽었을 때와
느낌이 사뭇 달랐다. 왜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죽음은 삶의
반대편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일부로서 존재하고 있다.
‘죽음’. 이 책의 등장인물들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은 죽음이지 않을까.
‘삶’만 생각했던 나에게 ‘죽음’은
어색하고 멀게만 느껴졌었다.
가즈키의 죽음을 겪기 전 와타나베처럼 나는 삶과 죽음을 이분법적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 삶, 죽음은
결국 삼각형을 이루는 꼭지점인데 말이다.
그렇다고 단순히 죽음만 말하는건 아니다. 죽음으로 인한 상실, 그리고 재생이 담겨있다.
사람과 관계가 만들어 질 때 새로운 세계가 만들어 진다고 생각한다.
그
세계가 우리만의 세계일 수도 있고 다른 세계와 연결해 주는 통로 일 수도 있다.
그 세계를 형성하는
사람과의 한 변은 그 사람의 죽음 후에도 유지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를 통해 다른 세계로 갈 수
있는, 그가 현재에 없더라도 말이다.
죽음 후에 그 변이
‘사라진다’고 생각하는 순간 상실이 시작 되는건 아닐까?
결국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인지하는 할 때 상실을 극복할 수 있다 생각한다.
나오코는 가즈키의 죽음으로 가즈키와 형성한 세계의 한 변이 사라졌다고 생각한 것 같다.
여전히
연결된 그 변을 결국 보지 못하고 그와의 세계 안에서 나오지 못한 것이라 생각한다.
죽음 뿐만 아니라 우리는 여러 상실을 겪는다. 그런 상실들을 어떤 모습으로 받아드릴지 생각 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물론
아직 정확하게는 모르겠다. 그러나 생각을 가질 수 있게 된 것만으로 감사한 책이다.
1. 지금
나의 뇌리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그 초원의 풍경이다. 풀 냄새, 약간
한기를 머금은 바람, 산의 능서, 개 짖는 소리, 그런 것들이 우선 가장 먼저 떠오른다. 너무나 선명하게. 그것들은 너무나도 선명해서 손을 뻗으면 하나하나 손가락으로 만질 수 있을 듯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그러나 그 풍경 속에는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아무도 없다. 나오코도 없고 나도 없다. 우리는 도대체 어디로 사라져버린 것 일까. 그토록 소중해 보였던 것. 그녀와 그때의 나와 나의 세계는 모두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그래, 나로선 나오코의 얼굴을 바로
떠올릴 수조차 없는 것이다. 내가 지니고 있는 건 사람 그림자 하나 없는 배경뿐인 것이다.
2. 모든
것이 너무나 지나치게 선명해서 어디서부터 손을 대면 좋을지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너무나 극명한 지도가, 그 극명함이 지나쳐 때로는 도움이 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젠 알게 됐다. 결국 따지고 보면 –하고 나는 생각한다
– 글이라는 불완전한 그릇에 담을 수 있는 것은 불완전한 기억이나 불완전한 상념밖엔 없는 것이다.
3. 뭔가를
말하려 해도 늘 빗나가는 말밖에 떠오르지 않는 거야. 말이 빗나가거나 아니면 전혀 반대가 되기도 해. 그래서 그걸 정정하려면 더 큰 혼란에 빠져서 빗나가버리고, 그렇게
되면 처음에 내가 무슨 말을 하려 했는지조차 알 수 없게 되어버려. 마치 내 몸이 두개로 갈라져서 숨바꼭질을
하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야. 한복판에 굉장히 굵은 기둥이 서 있어서 그 주위를 빙빙 돌며 술래잡기를
하는 거야. 딱 알맞은 말은 늘 또 다른 내가 품고 있어서, 이쪽의
나는 절대로 그걸 따라잡을 수 없는 거야.
4.죽음은 삶의 반대편에 있는 것이 아니라,그 일부로서 존재하고 있다.
5. 저
아이의 경우에는 여러 가지 문제가 약간 복잡하게 엉킨 줄처럼 뭉쳐 있어서, 그걸 하나하나 풀어나가는
게 중요해. 그걸 푸는 데 긴 시간이 걸릴지도 모르고, 어쩌면
어떤 기회에 툭 하고 한꺼번에 풀릴지도 모르고, 뭐 그런거야. 그래서
나도 판단이 안 서는 거야.
6. 늘
자신을 바꾸려고, 향상시키려고 애썼는데, 그게 잘 되면 짜증을
내거나 슬퍼했어. 몹시 훌륭한 것, 아름다운 것을 지니고
있었는데, 결국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을 갖지 못해서 이것도 해야 하고 저것도 바꿔봐야지 하는 생각만
하고 있었어.
7. 널
만난 덕분에 이 세상에 약간 적응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8. 물론
난 그다지 머리가 좋지 않아. 서민이고. 하지만 세상을 지탱하고
있는 게 서민이고, 착취당하고 있는 것도 서민이잖아. 서민이
알지 못하는 말이나 지껄이면서 뭐가 혁명이고, 무슨 놈의 사회 변혁을 하겠다는 거야.
9. 현실
세계에 이런 ‘데우엑스마키나(deux ex machina)’가
있다면 아주 편할 겁니다.
10. 나는
그가 아삭아삭 오이를 씹던 소리를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사람의 죽음이란 건 작고 기묘한 추억들을 남기고
가는 모양이다.
11. 사람이
누군가를 이해하는 것은 그럴 만한 시기가 되었기 때문이지, 그 누군가가 상대에게 이해해주기를 바랐기
때문이 아니야.
12. 자기
자신을 동정하지 마라
13. 난
지금보다 더 강해질 거야. 그리고 성숙해질 거야. 어른이
되는 거야. 난 지금까지는 그럴 수만 있다면 열일곱, 열여덟인
채로 있고 싶었어.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나는
이제 십대 소년이 아니니까. 난 책임이란 걸 느낀다. 이봐, 기즈키, 난 너와 함께 있었을 때의 내가 아냐. 난 이미 스무 살이 된 거라고. 그리고 난 계속 살아가기 위한 대가를
치러야만 해.
14. 인생이란
비스킷 통이라고 생각하면 돼. 비스킷 통에 여러 가지 비스킷이 가득 들어 있는데, 거기엔 좋아하는 것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것도 있잖아? 그래서
먼저 좋아하는 것만 자꾸 먹어버리면, 나중엔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것만 남게 되거든. 난 괴로운 일이 생기면 언제나 그렇게 생각해. 지금 이걸 겪어두면
나중에 편해진다고. 인생은 비스킷 통이라고.
15. 온
세계 정글 속의 호랑이가 모두 녹아 버터가 되어버릴 만큼 좋아.
16. 날씨
좋은 날 아름다운 호수에 보트를 띄우면 호수도 아름답지만 하늘도 아름답다는 것과 다를 게 없어.